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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소개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은 교육을 통해서 국가와 민족에 봉사한다는 설립이념 아래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설립이념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나라가 병합되고 국토가 강점되었던 시기에 인촌 김성수 선생에 의해 그 모체가 설립되었습니다. 선생은 인재양성을 통해 우리민족의 독립과 국가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교육구국'의 일념으로 1929년 고려중앙학원의 전신인 재단법인 중앙학원을 설립하였고, 광복 이후 중앙학원이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고려중앙학원은 교육을 통해서 국가와 민족에 봉사한다는 설립이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산하학교를 통해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역사의 전환기마다 민족의 미래를 주도적으로 개척하며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

설립자

인촌(仁村) 김성수

인(仁)이란 하늘로부터 받은 천성(天性)이요, 그 성(性)을 성대로 따르는 것이 인(仁)이며 청허(淸虛)로써 자수(自守)하고 비약(卑弱)으로써 자지(自持)하는 것을 인(仁)이라 한다. 인의예지(仁義禮智)중 으뜸인 것은 그 때문이다. 인촌의 겸손하고 관인대도한 도량과 어짐을 본 석재 서병오의 권유로 인촌<仁村>이란 호를 사용했다.

식민지 조국의 독립은 진정한 교육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인촌 김성수의 일관된 신념이었습니다. 1914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인촌 김성수는 사립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그는 최남선(崔南善 1890-1957) 안재홍(安在鴻1892-1965) 등 일본 유학시절 만났던 친구들과 함께 관련 자료를 모아 1915년 봄 백산학교라는 이름의 사립학교 설립 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첫 시도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좌절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있던 중앙학교로부터 운영을 맡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왔고 김성수는 젊은이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우겠다는 신념에 따라 그 제안을 받아들여 1915년 4월 중앙학교를 인수했습니다.
중앙학교를 인수한 김성수는 근대적인 경영방식을 도입, 학교 운영을 근대적, 합리적으로 바꿔나갔습니다. 김성수는 그곳에서 직접 영어와 경제를 가르쳤으며 1917년엔 중앙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김성수의 노력에 힘입어 중앙학교는 사학의 명문으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특히 한국어 교습이나 민족주의 교육을 통해 민족 교육의 요람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것은 3·1운동에서 수행했던 중앙학교의 역할을 보면 잘 드러납니다.
김성수는 중등교육 못지않게 고등교육의 중요성도 절감했습니다. 식민지라는 여건 때문에 유능한 젊은이들이 고등교육을 포기하거나 외국으로 나가야 하는 현실을 지켜본 김성수는 그것이야말로 민족의 손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성수는 1932년 6월 재정난을 겪고 있던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했습니다. 그는 유럽과 미국 유수의 대학을 둘러보고 그들의 선진적인 제도와 시스템을 보성전문학교에 도입하는 등 광복 때까지 보성전문학교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았습니다. 김성수의 노력으로 보성전문학교는 발전을 거듭했고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했으며 일제의 탄압을 뚫고 민족 정신을 지켜냈습니다. 보성전문학교는 1946년엔 종합대학인 고려대학으로 발전, 지금까지 한국의 민족대학으로서 명성을 드날리고 있습니다.

후기모집마감D-8